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13

 

1. 봄

잠이 오는 것은 점심 시간 이후에 강의를 잡은 내 탓이다.

졸고 있는 그들은 죄가 없다.

신체활동이 왕성한 나이.

하품만 한번 해도 피로가 풀리는 나이 이지만, 눈꺼풀의 무게를 어찌 이길까.

 

2. 시험

아무리 어렵게 내어도 만점은 있고

아무리 쉽게 내어도 아니되는 점수도 있는 법이다.

내 아무리 고민해도 나를 욕할 것이다.

 

3. 전공수업

지루함은 내탓이겠지만, 전공수업이 어찌 재미가 있을까.

나도 교양수업을 강의하는 사람이었다면 

무척 재미있었을 텐데.

나. 말 잘한다.

 

4. 청춘과 어른

저항하지 않는 젊은이는 그것을 청춘이라 부르기 어렵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이를 어른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5. 친해지기.

내 얼굴을 백년 쳐다본다 해도 친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먼저 다가와 

'안녕하세요.' 라고 먼저 말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3학년 지현이처럼 200미터 전방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나를 불러 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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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12

내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잔소리 중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다정한 태도와 적극성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을 무척이나 타박한다.

적극적이지 않아도 실패가 두려우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렇다면 그 인생은 머물러 있는 인생이 되겠다.

최소한의 실패마저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지만 실패를 해봐야 그것이 거름이 되고 다시 일어설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서 내가 감당 할 만한 실패의 임계치와 고통에 대한 체력도 길러진다. 

실패 한 번 없이 뭐든 잘되었다라는 사람을 본적도 없지만 있다 해도 신뢰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2024년도 나에겐 실패한 날들이었다.

그렇다고 주저 앉아 2025년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느낌에는 2025년도 몇 번의 실패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하고 또 하고 계속 할 것이다.

 

얼마전 그 태도가 좋은 아이가 한 명 생각이나서 취업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

해당 회사의 팀장에게 추천을 해주었고, 운 종게도 그 아이는 지금 잘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추천해 준 이유는 성적이 좋거나 나에게 잘 보여서가 아니다.

하려고 하는 태도가 보였기 때문인데 물론 인격적으로 어떤지는 잘 모른다.

나의 눈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아이라면 얼마든지 실패를 밑거름 삼아 디디고 올라설 수 있을 것 같다. 

실패함으로써 최소한 우리는 조금이라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어른들이 해야할 일은 아이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여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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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나름대로 결산

스몰토크/수다|2024. 12. 27. 10:07

일. 

 - H병원 EMR 신규 구축.

 - K병원 EMR 고도화 사업은 어렵게 진행되고, 잘 되지도 않았다.

 


강의.

의료정보기술

 - 다른 해보다 준비도 많이하고 열심히 강의 한 듯.

보건의료데이터관리

 - 학생들이 뭔지 모르겠다고..

 

자격증.

 - CPPG (최고의 난이도였다는 41회 획득자)

 - ISMS-P 인증심사원 (50점으로 낙방)

 - 경영정보시각화활용능력 필기 (신설된 자격증인데, 역시나 최고의 난이도 회차에 응시하는 사람)

 - 시큐어리스트 1급 (공짜라길래 일단 응시)

 - 의료정보관리인증심사원 (자격 갱신)

 

책쓰기.

 - 건강정보보호 (마감을 펑크낸 모 교수의 대타로 참여) 

 - 보건의료데이터관리 (나름 열심히 쓰고,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기도 해서 정리도 잘해서 원고 넘긴듯, 출간은 2025년 1월)

 

 

올해의 영화.

Perfect Days / 빔 벤더스 (내내 기억에 남을 영화. 여러번 보았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31518030&qvt=0&query=%EC%98%81%ED%99%94%20%ED%8D%BC%ED%8E%99%ED%8A%B8%20%EB%8D%B0%EC%9D%B4%EC%A6%88

 

영화 퍼펙트 데이즈 : 네이버 검색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네이버 검색 결과입니다.

search.naver.com

 

 

올해의 책.

창조적 시선 / 김정운

작년에 나온 책이지만 어쩌다 보니 올해 구매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에 대한 이야기와 김정운 교수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두께도 두껍고, 책 가격도 무척 비싸지만 그가 들인 공에 비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801642

 

창조적 시선 | 김정운 - 교보문고

창조적 시선 | 창조의 비밀을 밝혀낸 베스트셀러 『에디톨로지』 이후 10년 연구 완결판! ‘창조성creativity’의 구성사構成史에 관한 탁월한 통찰! 메타언어 창출을 위한 새로운 글쓰기 실험으로

product.kyobobook.co.kr

 

 

올해 간 곳.

울산 간절곳

인천 송도

경기 고양

충남 천안

서울 서대문, 마포 등 

 

 

올해의 까페.

칸칸 에스프레소 / 서울 종로구

(폭우가 오는 날 우연히 찾아 들어간 까페)

 

 

올해의 구매.

맥북프로 14 M3 Pro (애증의 맥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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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ve got mail.

스몰토크/수다|2024. 11. 10. 12:14

가을이니 편지를 써야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는데, 편지글에 애용하던 펜이 어디있는 지 찾을 수가 없다.

집에는 늘 편지지와 편지 봉투가 있어서, 편지를 참으로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보낸 편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편지도 많았는데, 어쩌지 못한 편지는 어쩌지 못한 마음과 같았다.

'당신에게'라고 쓰고는 펜 끝을 한참이나 노려보며, 주저하던 때도 생각이 난다.

마음을 그대로 글로 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 전해두었던 편지를 그자리에서 읽어봐도 되느냐는 물음에 그럼요라고 한적이 있다.

조용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눈동자의 움직임과 알듯 모를듯 한 그 미소를 보는 것 만으로도 편지를 전해주는 즐거움의 전부가 아닌가 한다.

'넌 참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구나.'

요즘 누군가에게 편지를 전해주면 이런 소리를 듣는다.

편지는 분실하거나 찢어버리면 언제든 소멸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말이 서툰 나는 글이 편했다.

새겨둔 마음을 탁본해 글로 꾹꾹 눌러써 봉투안에 넣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소심한 탓이다.

봉투에는 You've got mail 이라고 작게 써놓고는 편지를 받아들 사람의 표정을 상상했다

편지란 어쩌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던 이기심을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내버린 편지의 판단은 이제 받는 자의 몫인 셈이다. 

가을엔 편지를 쓰면 종이에 가을냄새와 바람과 햇살이 그대로 묻어서 상대에게 전해지길 고대한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누구에게 보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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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스몰토크/수다|2024. 10. 11. 10:27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수상된 그녀의 소식으로 뉴스는 떠들썩 하다.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국에서 노벨상? 이라는 반응일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받을만 하지.' 하며 그녀의 책을 다시 꺼내 읽어 볼것이다.

 

한국은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소설을 유해도서로 지정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제 유명해졌으니, 부디 그녀의 글이 많이 읽히길 바란다.

 

 

한강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다른 작가들보다 압도적으로 글을 쓴다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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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11

한 아이가 쉬는 시간에 열심히 숙제를 한다.

옆에 있는 다른 과친구에게 물어도 보지만 뭔가 찾기가 어려운 것인지 어두운 얼굴로 화면만 쳐다본다.

지나가다 스윽하고 봤는데 의료기관과 관련된 현황을 조사하고 관련 데이터에 대한 것을 서술하는 숙제인 듯 했다.

아이에게 좀 도와줄까 했더니 끄덕인다.

검색 포털을 열심히 한 흔적의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쉬운 세상이구나. 작은 검색 창에 알고 싶은 무언가를 넣으면 찾아주는 세상.

컴퓨터를 전공하고 그것으로 밥먹고 살고 있지만, 한번도 컴퓨터를 신뢰하거나 좋아해 본적이 없는 나는 여전히 낯설다.

나의 학생때는 인터넷이 없었으니 당연히 무언가를 알고 싶으면 학교 도서관 부터 갔다.

눅눅하고 어둑한 책 틈 사이에서 쪽지에 적어놓은 청구기호와 저자 이름을 책과 비교하면서 찾아야 했다.

두꺼운 책에서 내가 찾는 정보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덕분에 쓸데 없는 자료도 보게 되고 의외의 정보도 알게 되는 기쁨도 누렸다.

아마도 '대구의 공공의료기관 현황' 에 대한 숙제를 낸 교수는 단번에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내어 배껴 적기만 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을 것이다.

초롱거리는 아이에게 나는 '공공데이터 포털'이나 '보건복지부' 의 정보공개 자료에 있을 것이니 그곳의 최신 자료를 확인하고 취합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말해주었지만 이해를 못한다.

빠른 시간에 답만 적어내면 그만인 우리 교육이 학생들을 이렇게 연습시킨 것이다.

직접 찾아내서 스프레드 시트로 만들어 보여주고는 이제 너가 해봐 했더니 그제야 내가 잡은 마우스를 낚아 채 간다.

노하우(Know-how)보다 노웨어(Know-where)가 중요해졌다고 하지만 깊은 사려 없이 쉽게 얻어진 지식이란게 무슨 소용일까 싶다.

내가 그 시절 도서관에서 바보같은 고생과 시간을 써가며 찾아낸 것들은 쉽게 잊혀 지지 않았다.

대신에 클릭 몇번으로 찾아낸 것들은 그저 소비하고 마는 활자에 불과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예전이 좋아다거나 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쉽게 얻어진 것은 쉽게 망각한다.

 

댓글()

조예와 품위

스몰토크/수다|2024. 8. 29. 11:01

그래. 

분명 요즘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조예는 큐레이션으로 대체되었고 품위는 정의조차 모호하다.

조예는 관심과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경험을 축적할 여유가 없고, 관심이 없으면 의미가 사라진다. 

 

아이들에게 조예를 기르라고 말해준다.

문해력 상실의 시대라 '조예'라는 뜻을 모르는 아이가 다수다.

가볍게 즐기면 그만이지 그렇게 까지 알아야 해요?

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조예를 기른다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풍요로운 삶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전문성은 이미 AI가 있으니 다양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사람이지, 컴퓨터의 프로그램이나 실행 프로세스가 아니다.)

불행한 인생을 가진 사람은 자신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주변에 꼭 그런 사람있다.)

자신의 삶을 성숙시키고 가지고 있는 지식을 지혜와 경험으로 치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예의와 겸손으로 감싸고 자신의 태도로 만들 수 있으면 품위가 된다.

 

삶의 풍요로움은 잡다한 것을 이것 저것 많이 해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험이라는 얄팍한 속임에 시간만 허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어른들은 이것 저것 많이 해보라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란 것이 생각처럼 많지도 않을 뿐더러, 실패를 용인해주는 환경이라는 것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해보는 것이라도 의미있게 해야 하고 비록 실패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얻어야 하며 어제보다 좀 더 깊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언제나 나에게 시간은 유한하며 내가 얻는 경험과 지식이 정말 나에게 유익한가를 순간마다 고민해야 한다. 

경험은 다만 세월의 축적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쉬 가벼워서도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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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스몰토크/수다|2024. 7. 23. 09:54

 

'뒷것' 김민기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용필보다 김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그가 우리 문화사에 어떤 인물인지 가늠할 것이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이 없어지기 전에 가봤어야 했나 하는 미련한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아침이슬'과 '상록수'의 세대는 아니다.

서슬퍼런 유신시대에 대학을 다니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위해 저항하거나 단결하지도 않았다.

그가 만들어낸 노래와 그가 길러낸 문화적 산물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의 죽음은 끊어져 버린 사슬을 보는 것처럼 종일 먹먹하게 한다.

말없이 티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살아냈던 그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내내 그리울 것이다.

 

 

 

 

https://programs.sbs.co.kr/culture/hakjeon/vod/82155/2200052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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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지는 일

스몰토크/수다|2024. 5. 27. 11:32

환경을 바꾸고, 하는 일을 바꾸고, 심지어 먹는 것도 바꾸었다.

모으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어쩌다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진작에 그랬어야 헸다. 

미련을 추억으로 치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감정은 지나가고 결과는 남는다는 어떤이가 말이 떠올라 남는 결과가 무엇이 있을까 싶어 '자격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남았고 감정도 남았다.

인생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아이가 교수님도 스포티파이 들으시나 봐요.

늙은이는 그런것도 없이 사는 줄 아나보다. 

저장된 음악 리스트를 공유하자고 말했더니 좋다고 했다. 

아이가 전해준 음악은 오디오로 틀어두고 배경이 된다.

더 이상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듣지 않는다. 

가사에 감정이 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미처 삭제하지 못한 어떤이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괜찮아졌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더 이상 기억나는 것도 없다.

결과도 남지 않았고, 감정도 희미해졌다. 

그대로 다행인 것이다. 

 

어떤 날에.

내가 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 보고 주변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가에 대해 질문도 해보는 시간이었는데 한정된 시간과 언제든 고갈될 자원을 생각하면 내 삶이 아까워졌다.

내가 아름다운 시절을 살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야겠지 싶었다.

소모되고 번잡한 곳에서 나와 단정한 책상에 앉았다.

 

괜찮아지는 날이 내게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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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10

내 수업을 듣는 한 아이가 '이거 드릴까요' 하면서 내 손에 벚꽃잎을 하나 놓아준다.

나는 그 아이를 잠시 쳐다 봤다. 

갑작스럽기도 했고, 예쁘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아직 당연한 사람들을 나는 매주 본다. 

20년 넘게 아프거나, 늙었거나, 웃을 일이 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살다가

팔자에도 없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 웃거나, 졸거나, 정신없고 예쁜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 밝아졌다.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르치거나(이말이 너무 싫다) 지식을 전하거나 조금씩 알려주면서도, 내 강의실의 아이들 만큼은 경쟁 시장에 몰아넣기는 싫었다.

경쟁은 사람을 멍들게 하고 다수의 아이들은 패자로 만든다. 

약육강식은 아프리카 초원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그리해서는 안된다.

그것보다는 그들이 같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길 바랄 뿐이다.

한국사회의 가장 문제는 '경쟁'과 '엘리트' 주의이다. 

이 두가지가 얼마나 사회악으로 작용하였는가는 경쟁적으로 공부를 하고 타인을 물리쳐 낸 그들, 소위 엘리트가 된 이들이 지금 어쩌고 있는지 보면 된다.

경쟁에서 이기고 높은 곳에 올라선 사람이 아닌 약자를 헤아리고 사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엘리트'라 정의하고 싶다.

내 시대에서 경쟁을 끝내야 마땅하다.

경쟁의 삶은 행복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불행과 좌절만 양산한다.

언제쯤 너희에게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벚꽃이 가득한 교정이라며, 수업 말고 사진 찍으러 나가자는 어떤 아이의 말에 웃게된다.

그래. 4월이지.

시간은 아껴쓰기도 해야 겠지만, 이롭게도 써야 한다.

당연한 세월에서 당연하지 않은 계절을 보낸다.

너희의 젊음이 나의 청춘이지는 않지만, 너희들 덕분에 매주 힘을 얻는다.

무심한 침묵에, 잠와요 하는 투정에, 까르르 웃는 아직은 아기일지도 모르겠는 그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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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9

학교 도서관에서 신청한 도서가 입고되었다며 메시지가 도착했다.

전공서적 같은 경우는 구매를 해서 사서 보는 편인지만,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것들은 빌려보는 편이다.

학교 도서관의 경우, 원하는 도서를 신청하면 2-3주 안에는 사다 놓고 연락을 준다.

책을 가지러 도서관에 가면 열람실에 학생이 조금 있을 뿐 책을 많이 빌려 보는 것 같지는 않는 듯 했다.

아무래도 콘텐츠가 무한정 나오는 시대에 고리타분은 종이책을 누가 읽으랴 싶기도 하지만, 아쉽기는 하다.

강의 말미에는 꼭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학생들에게 당부를 한다.

모든 인생을 다 살아볼 수 없고, 남의 경험과 이야기를 충분히 읽고 살아야 나의 인생이 풍요로워 지고 혜안이 부족해 지지 않는 다고 말이다. 

별로 듣는 것 같지는 않는다. 

책을 중요성을 알기에는 그들은 아직 젊은 것일까.

고리타분한 선생이다.

 

놀아도 도서관에서 놀았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학생 식당에서 이른 아침밥을 먹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몇 장을 읽고 엎드려 자고 그러기를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책을 가까이 했던 것 같다. 

도서관 그 특유의 눅눅한 책 냄새도 좋았던 것 같다. (확실히 후각의 기억은 오래 남는 법이다.)

물론 내용이야 생각도 아니나고 무얼 읽었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활자(text) 를 읽어내고 문맥(context)를 파악해 내는 능력은 길러내길 원했던 같다. 그리고 나쁜 글을 걸러내는 나름의 방법도 터득하긴 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

 

천쓰홍의 '귀신의 땅' 이라는 소설과 몇 권을 책을 부탁했는데, 책을 담기 위해 가져간 가방이 풍성하다.

어떤 학생도 읽어볼 것 같지 않는 소설을 이렇게 도서관에 사다놓기를 부탁해 놓으면, 언젠가 우연히라도 읽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튼 나는 죽기 전에 책을 만권 쯤 읽고 싶다.

 

다음 강의 때는 너의 독서가 궁금하다라고 말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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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 듣기

스몰토크/수다|2024. 3. 19. 11:50

클래식. 옛날의 의식(儀式)이나 법식(法式),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나에게는 고리타분하다와 동의어였다. 

어느날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갔다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이끌려 지하로 내려갔던 적이 있다.

교보문고 지하에는 음반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탄노이 오디오를 가져도 놓고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었다.

좋은 음질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쭈뼛거리며 앞으로 다가가 듣고 있으니 오디오 장비 뒤에 있던 남자가 듣고 싶은 음반이 있으면 틀어주겠다고 하였다.

난 아는게 '바흐'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가 오디오로 들려준 것은 'Stuttgart Chamber Orchestra'가 연주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었다. 

그 번잡한 교보문고 지하에서 그 남자와 나는 서서  '바흐작품번호 988 Aria'를 들었다.

방금 들은 앨범에 대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의 얼굴은 '메탈리카' 였지만, 그의 입에서는 '보통은 글렌굴드의 피아노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겠지만, 자신은 이 실내악 연주 앨범이 좋아서 자주 듣는다 하였다.' 

무슨말인지 모르겠더라.

그럼에도 그 남자가 다시 보였다. (역시 외모를 누군가를 평가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들고 온 앨범이 그것이었고, 그렇게 나는 클래식을 처음 듣기 시작했다. 

요란스러운 광고와 오늘 저희 사귄지 100일이예요 따위의 사연을 듣지 않아도 되는 '클래식 FM'은 참으로 좋았다. 

비록 공부를 하면서 듣지는 않았지만, 궁금하면 선곡표를 찾아보고 다른 것도 들어보기로 하였다. 

스마트폰의 스포티파이 알고리즘은 '아이유'의 신곡보다는 '비킹구르올라프손'과 '조성진'의 새 앨범을 추천리스트로 알려주게 되었다.

 

나도 고리타분한 사람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클래식을 듣는 아침을 좋아한다. 잘 모른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모든 것에서 전문가 타령을 하는 세상이지만,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필요한 만큼 구하고, 원하는 만큼 얻으면 된다.

 

 

https://youtu.be/QGd81cE5yLU?si=FfTh-_AwY190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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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8

방학기간에는 회사 일과 공부하는 것 등으로 학기 중 보다 오히려 바쁘게 지내는 편이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시간표와 관련된 문자를 받게 되면, 다음 학기의 강의자료를 한 번 펼쳐보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강의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계획없이 사는 내가 계획서를 써야 한다.

물론 예전에 작성한 것들을 대부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 되는 것과 수업해보니 굳이 안해도 될 것 같은 것은 과감하게 뺀다.  물론 그 공백에는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 넣는다. 

 

첫 주에 무엇을 할까. 어떻게 말할까. 그것이 가장 고민이 된다. 첫 주가 어렵다.

강의 첫 날에는 대부분의 수업이 그렇듯이, 앞으로의 수업 내용과 교재, 평가 방법 등이 주로 안내가 된다.

나의 경우에는 허락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허락되는 것 중에서 하나는 '수업 중에 스마트폰 사용' 이다.

내가 수업 중에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이유는 볼펜 한 자루와 필기용 노트 한 권으로 강의를 듣고하던 나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컨텐츠 소비와 시도때도 없는 커뮤니케이션 기계 정도로 치부될 지 몰라도,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그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기용 스마트패드를 이용한다거나, 급하게 자료 검색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제약을 전혀 두지 않는다. (물론 전화를 받거나, 수업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도구를 나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설문조사나 강의평가를 한다던지, 퀴즈를 내어주기도 하고 적극적인 학생에게는 커피를 보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는 당당하게 스마트폰을 올려두고 열심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심지어 영상 콘텐츠를 감상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마트폰이 당신 인생에 가져다 주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 해준다.

 

1. 남의 컨텐츠를 아무리 많이 보아도 나의 지혜와 혜안 그리고 조예가 절대로. 깊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남의 컨텐츠는 아직까지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2. 대화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상대방 눈을 보지 않는 카카오톡과 SNS DM이 정말 대화일까 의문이다.)

3. 텍스트가 가지는 힘보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가지는 힘이 100배는 더 크다. (당신의 진심을 텍스트로 전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4. 영상으로 길들여진 머리는 글을 읽지 못하게 하고,  독해력과 사고력을 점점 떨어뜨린다.

5. 컴퓨터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인간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6. 때론 불편한 것이 정성이 되기도 한다. 컨텐츠를 친구와 공유하는 것보다 그를 초대하고,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차려내고, 손편지를 써서 전해주는 것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여러분의 세상은 아마 점점 좁아질 것이다.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온라인 세상과 타인의 콘텐츠가 학생들에게서 뺏아 가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 것이 장점이 없지 않겠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데 정말 도움이 되는 지 의문이다.

세상을 확장하고 넓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동감하기 어렵다.

나의 세상은 백 명 정도의 사람이면 족하지 수 만명의 사람이 필요치 않다. 

 

꼰대.

나는 꼰대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꼰대'라는 소리를 피하려 책임까지 회피하는 입 꾹 다무는 어른이 되기는 싫다.

차라리 말해주는 꼰대가 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그리고 듣는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일까 하는 의심과 가려서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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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랑하는 사람

스몰토크/수다|2024. 1. 3. 15:30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놓인 비빔밥을 비벼주었더라던, 어떤 작가의 글을 읽고는 한참이나 멍해졌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방보다 먼저 손을 뻗어 그 사람을 챙겨주는 것은 사랑하는 연인사이든 어린 자식이든 더 사랑하는 사람만이 무의식으로 할 수 있는 태도이다.

그 사람의 진심은 태도가 말을 한다. (눈빛도 태도안에 포함된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그 앞에 놓인 국을 덜어주고 생선 가시를 발라주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더 사랑한 이는 나를 덜 사랑한 이유로 떠나갔고,

더 사랑한 이는 어떤 이유로든 덜 사랑한 사람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싫어서 덜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덜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번뇌가 적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점점 좁아진다.

 

새해에는 비록 엄혹한 시간이 온다 하더라도, 좁아 지지 않는 세상에서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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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안정에서 생긴다던데.

스몰토크/수다|2023. 11. 20. 10:12

사십이 훌쩍 넘고 오십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이 나이 쯤이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물론 저마다 안정의 기준이란 게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침에 차를 마시고 오전과 오후에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으며, 저녁에 근심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 정도였다.

 

조직에서 팀장 자리를 10년정도 한적이 있는데,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방황하기만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내가 능숙하게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한다고들 말했지만,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그렇지 않은 '인간들'은 멀리 하려고 노력했지만, 모여서 일하는 조직에서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세상에 대한 분노만 커졌다.

정의롭지는 않았지만, 부조리에 눈 감기는 힘들었고,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게을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팀장을 그만두고 책과 글을 읽었다. 

나는 실용주의자이니 선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읽다 보면 얻는 게 있겠지 싶었다.

20년 가까이 컴퓨터 앞에서 굽어버린 허리를 조금 펴고 걸어 보기로 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걸으며 어제 보다는 나은 인간이 될 궁리를 했지만, 무얼 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사람에게도 무언가를 물어오는 사람은 참 많다.

직장 생활이 힘들다는 이도 있고, 하고 있는 프로젝트 진행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이도 있고, 나같은 사람에게 무얼 배우려고 가르쳐 달라는 사람도 있다. 

가끔 만나 차를 마시는 S는 선생님하고 있으면 '고즈넉한 사찰에 온 기분이예요.' 라고 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도미닉 밀러'의 기타 연주를 들으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책을 읽었다.

내게 안정과 분노가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도는 안정에서 생긴다고 했다.

내가 '도'를 얻어 무엇하겠냐마는 뭐든 안정을 찾을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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