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김진영

책/에세이|2025. 5. 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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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삶은 사는 것이 나름의 인생 지향점이라서 붐비는 책상과 책꽂이를 수시로 정리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꼭 아껴두는 책은 놔두는 편인데 어쩐 일인지 '아침의 피아노' 라는 책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어딘가에 쓸려 중고서점으로 간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동물.

다시 구매하려고 인터넷을 기웃거리니 절판되고 없다.

이렇게 좋은 책을 절판하다니 어리석은 출판사구나.

중고로 팔아 넘긴 책을 중고로 다시 사고야 마는 나는 그들보다 더 어리석다.

 

그의 글은 정갈하고 아름답지만 처연하지 않다.

그가 죽기 전까지 쓴 글이라고 감안하고 읽더라도 그러하다.

슬프지만 처연하지 않고, 받아들인 현실이라도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에게 배울 점이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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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 김진영

책/에세이|2025. 3. 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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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영의 일기글이다.

사실 두 번 읽은 책이다.

집에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 다시 읽기로 한다.

첫 문장부터 나를 흔든 그의 글.

"눈이 내리면서 가르쳐주는 것. 고요히 사라지는 법. 모든 것들을 고요하게 만들면서."

 

그는 강의를 하면서 수다에 가까웠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나도 가끔 강의를 하러 간다.

나름 열심히 하고 나온 날에 돌이켜 보면 지식으로 포장된 수다에 가까운 강의.

정갈하지도 담백하지도 체계도 없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의 일기는 모아져 책이 되었지만, 나의 일기는 여기저기 흩어져 가루가 되어 기록될 뿐 모아지지 않는다.

부럽지만, 괜찮다.

그가 죽고 없는 날들에 몰래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면서 그의 글은 참으로 정갈하구나 싶었다.

고운 선을 가지고 있지만, 영원히 펴지지 않은 것 같은 단단한 수묵화의 '난' 을 보는 것 같았다.

 

책 표지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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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 김훈

책/에세이|2024. 8. 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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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어른이라고 불릴만 한 사람이 두 분 계시는데, 한 분은 얼마전 돌아가신 김민기씨이고, 또 한분은 김훈 작가인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시대를 살아내면서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두 사람은 딱 그런 사람이다.

오랜만에 나온 김훈작가의 '허송세월'은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다.

서슬 퍼렇고 날카로운 그의 문장은 이 책에서 힘이 빠진다.

힘을 뺀다고 고수가 하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날이 선 고수이며 힘을 뺀 문장 안에서도 날카로움은 잃지 않는다.

나이든 남자의 산문이라고 해서 세월의 무상함이나 쓰고 있는 글은 아니므로 안심해도 된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을 빛과 볕으로 가득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더운 여름 그의 글을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숙연해 하기도 한다. 

인쇄된 책에서도 마치 원고지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가 부디 오래동안 연필을 쥐고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가길 소원한다.

 

 

 

http://aladin.kr/p/TR5yM

 

허송세월

삶의 어쩔 수 없는 비애와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훈. 그가 《연필로 쓰기》 이후 5년 만에 독자들을 다시 한번 사로잡을 산문으로 돌아왔다. 그 어느 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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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책/에세이|2023. 12. 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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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해 읽는 마지막 책일 것 같다. 12월에 읽을 책은 고민 끝에 고른다.

11월까지 읽은 책들은 아마도 기억에 없을 것 같다가도, 12월에 읽은 책은 기억에 남는다. 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석원의  새 책을 읽기로 했다.  그의 책을 손에 들때면, 이 양반은 책 제목을 참 잘 지어 내는구나 싶다. 

'어떤 섬세함'

 

이석원이라는 사람은  '언니네 이발관' 이라는 밴드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나는 그의 글만 좋아한다.

책에서 어릴적 비교적 간단했던 행복의 조건을 지녔던 우리가, 어쩌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고, 왜 그리 작은 침범에도 무너지고 마는 허약한 사람이 된 것인지, 왜 우리는 자주 불안한지.. 그래서 우리가 진정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나 또한 불안과 공포를 안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지금의 삶이 여전히 유지될 수 있을 지, 어느 순간 아주 작은 돌에 의해 와장창 깨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등등에 대해.

누구다 다 그렇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누구다 다 그렇다고 나의 공포와 불안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나름의 공포와 불안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고 일을 많이 하지 않을려고 한다. 

게으름을 포장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나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다.인생 전반으로는 나태하게 살고 싶고, 하루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

 

 

글쓴이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

가수라는 알려진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고 사람을 두려워하여 앞에 나서지 않는 것 같다.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성격과 섬세함이 꾸준히 글을 쓰게 하고 책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는 시종 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와 섬세함으로 발현된 불안과 그에 따른 쉰 한살 된 남자의 대응을 이야기 한다.

노부부 이야기로 서문을 여는 책은 반복적이지만 무너지지 않을 틀과 같은 일상과 누구든 가지고 있을법한 어떤 섬세함이 오히려 타인이 느끼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는 것을 알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불안없이 평안한 삶이 아니라, 섬세한 불안을 잘 극복하는 사람이 되었음 한다. 

 

 

 

자주 그의 글을 읽고 싶다면 블로그에 가면 된다.

글을 위한 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글을 위한 글 : 네이버 블로그

나이탐험가

blog.naver.com

 

 

 

 

어떤 섬세함 / 위즈덤 하우스 (17,500원) , 이석원 

알라딘: 어떤 섬세함 (aladin.co.kr)

 

어떤 섬세함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만의 언어로 꾸준히 기록해 온 이석원 에세이. 이 책에서 작가의 시선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한다. 서로를 미워하기 바쁜 요즘이기에 타인을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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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앉는 밤 - 용윤선

책/에세이|2023. 6. 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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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그녀는 나에게 우체국등기로 2권을 보내왔는데, '고선생님' 앞 이라는 봉투의 글씨가 선명했다.

사진을 찍어 고맙다고 전했고, 단정한 그녀의 글을 당분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였다.

늘 가방에 두고 꺼내 들어야지. 

 

서간집.편지체의 글로 쓴 책.

익숙하면서 낯선글이 편지가 아닐까.

종이가 아닌 다른 매체로라도 우리는 누구에게든 편지를 쓴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많이 보내던 때가 있었다.

깨끗한 미지를 앞에 두고 검은 펜을 들어 한 글자씩 탁본한 마음을 봉투에 봉해 간절히 보내더랬다.

나의 편지가 한정된 대상에게 보내는 '안부' 라면  용윤선의 편지는 흠모하는 여러 타자에게 보내는 '연서'이다.

이젠 읽을 수 없는 철학자 '김진영'이나 골드베르그 하면 떠오르는 '글렌굴드'처럼 사람이거나 에디오피아 '예가체프'처럼 사람이 아닌 것에게도 그녀는 편지를 쓴다. 심지어 그녀 자신에게도 편지를 썼다.

 

책을 받자 마자 아직도 책상에 가득한 그때의 그 종이가 생각이 나서 한동안 쓰지 않았던 편지를 썼다.

보낼 마음은 없지만, 보내지 못한 마음은 여전히 많다.

 

 

주저하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당신에게' 일 것이다.

 

 

 

책은 4월에 받았지만, 이제서야 글을 올린다.

어떤 책은 나만 알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편애하는 작가님이 중쇄를 찍을 수만 있다면야 어떤 방법으로든 홍보하고 싶다.

그것도 아니되면 나라도 사야지.

 

그러고 보니,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써 본적이 없구나.

 

 

 

 

 다시 앉는 밤 - 용윤선 / yeondoo / 24,000원

 

 

http://aladin.kr/p/wzyIV

 

다시 앉는 밤

용윤선 작가가 4년 만에 펴낸 서간집이다. 용윤선 작가는 자신에게뿐 아니라 몸에게도 편지를 썼다. 1년간 스물세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커피와 요가와 책을 사랑하는 작가 용윤선은 자신이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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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 좋은 방 - 우지현

책/에세이|2023. 4. 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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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의 대부분은 그렇게 말한다.

그렇다고 혼자를 잘 견디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요한 혼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좋다는 것이지만, 두고두고 혼자 인 것을 좋아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긴 나에게는 그 시간을 소중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허투로 다른 것에세 시선을 뺏기지 않도록

번잡한 것들을 주변에 두지 않도록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좋은 것을 많이 보도록 하는 것.

 

그림은 혼자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해준다.

전시회에 가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려 있는 그림을 가만히 마주하고 있으면 일렁임과 고요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우지현' 작가도 혼자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인 것 같다.

혼자 오롯이 방안에서 테라스에서 식당과 까페에서 혼자 있는 그림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림들은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단단하게 혼자 서 있는 자기만의 인생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다.

 

 

모두에게는 그만의 방이 있다.

숨고 싶거나 쉬고 싶거나 자기만의 공간으로 운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기의 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소외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으로 삶을 관조하고, 충전하며, 자신을 다시 조명한다.

관계의 번잡함에 벗어나 마음을 회복한다.

 

 

▶ 혼자있기 좋은 방 / 우지현 / 2018년 

http://aladin.kr/p/n1Vi5

 

혼자 있기 좋은 방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이때의 방은 꼭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어쩌면 그림 한 점의 위로만으로도 가능할지 모른다. 화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우지현 작가의 <혼자 있기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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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강석경

책/에세이|2023. 2. 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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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에서 2014년에 출판된 동명의 에세이가 수정,보완되어서 나왔다.

그 사이 경주 황리단길과 유명한 서점 어서어서 까지 조금은 바뀌어 버린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추가된 것 같다.

경주는 전국에서 녹지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란다. 아마도 시내에 떡하나 왕릉이 있고 개발제한과 각종 문화재가 즐비한 탓이겠다.  

경주를 모르거나, 한번도 가보지 않을까 싶은 도시 중 하나임은 틀림없지만, 우리는 경주를 모른다.

 

책은 강석경 작가의 경주 여행가이다.

경주에서 태어난 이는 아니지만, 경주를 고향처럼 드나들며 애정을 듬뿍 담아 글로 전달해 준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이 고도를 사랑한다' 일까.

작가의 사랑을 받은 곳은 

용정사지, 게림로, 괘릉,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대릉원, 월성, 산림환경연구소, 남산동, 무열왕릉, 교동, 인왕동, 황오동 골목, 노서동 고분공원, 진평왕릉, 식혜골, 오릉, 북천 등이다.

 

책 중간 중간에 경주를 그린 유화가 너무 예뻐서 책을 꼭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계림을 지나 궁터에 들어서자 거대한 황도 같은 보름달이 솔숲 위로 솟아 있었다
어릴 때 크레용으로 칠하던 진노랑색이었다. 진지왕의 혼이 도화녀를 찾아가 야합한 것도 저런 보름달이 아니었을까.
황도 같은 보름달에 잉태된 비형랑이 월성 날아 넘어가는 환영을 본 듯 했다.
효성왕 3년 여우가 월성궁 안에서 울다가 개에게 물려 죽은 날도 이런 보름달이 아니었을까.

 

 

자극적이고 광고글 가득한 SNS 여행 사진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따라 천천히 경주를 걸어보자.

더 나아가, 남의 눈으로 여긴 꼭 가봐야해가 아닌, 남의 미각으로 여기 맛집이야 라는 관광과 여행보다는 경주라는 도시를 천천히 느끼며 공부하고 직접 눈으로 보며 자신만의 도시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사족.

말랑한 맛집 소개해주는 그저 그런 여행에세이는 아니니 그런 것을 기대하시는 분은 다른 책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출판사, 난다

저자, 강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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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쓰기 - 정희진

책/에세이|2023. 2. 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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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이는 않는 차별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보인다.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그 차별을 묵인하고 살아 갈 뿐이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보니 '다문화 가족 지원 센터' 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차별이 만들어 낸 괴이한 단어. 

 

'베트남 신부'는 다문화, '미국 신랑'은 글로벌 인가?
이런 차이는 인종주의, 남성 중심주의, 국가간 위계를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다문화가족'은 다양성이 차별로 전락한 전형적인 사례다. 

/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中

 

서울시에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주지 않는다며, 얼마 전 장애인연합회에서 시위를 하고 지하철이 지연되고 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비 장애인인 나는 길을 나서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저들에게는 결심이 서야 하는 일이며 어쩌면 목숨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그렇게 많다고 하는 장애인 한 명이 눈에 띠지 않고, 내가 매일 방문하는 까페에도 보이질 않는구나 싶었다.

 

길이 막힌 사람에게 길은 비유가 될 수 없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하면 길에 나서는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된다.

길과 집이 메타포가 되어서는 곤란한다.
길이 안전하지 않으면 집도 안전하지 않다.
가정 폭력은 '험한 세상'에 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볼모로 작동한다.

/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中

 

장손이라는 표면적 사실 아래에서 자란 나는 그것이 가져다 주는 여성의 희생과 부조리를 말하기 위해 무던히 아버지와 싸웠던 기억이 있다. 

그는 제사장이라는 권력을 휘두르며, 먹지도 않는 음식을 바치라며 집안의 모든 여성들을 괴롭혔다. 

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보고싶다는 말 대신 암묵적 약속의 날에 모여들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식구와 혈연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 죽고 없는 자의 제삿날이라는 것을. 

엄마가 사라지고, 여동생이 결혼을 해 독립을 하고, 숙모가 늙고 아파지니 절대로 없어질 것 같지 않았던 제사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없어졌다. (정작 본인이 음식 차릴 엄두는 나지 않는 듯 하다.) 

 

'가부장 없는 가부장제 사회'
남성이 성역할을 못함으로써 여성이 이중 노등을 하고, 그러면서도 남성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는 '식민지 남성성 사회 '다.

한국 남성은 외세 혹은 국가 내부의 자신과 다른 진영에 관심이 있지, '여성 문제'는 언제나 사소하게 생각한다.

/ 정희진,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中

 

'정희진의 글쓰기' 라는 책은 꼭 읽어야지 하며, 내내 미루며 읽지 못한 책 이었다.

세상을 똑바로 읽어 낸다는 것은 용기를 내고, 치부를 봐야 한다는 일종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의 공부하기는 독서라면, 정희진의 공부하기는 사유하며 글쓰기이다.

5권의 책이 가져다주는 활자의 양은 부담스럽겠지만, 글을 금방 읽힐 것이며 사유는 길어 질 것이 분명하다.

 

 

 

 

출판사, 교양인

저자, 정희진

총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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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 변종모

책/에세이|2022. 11. 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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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청춘은 그 나름의 힘듦과 고통이 있고, 나 또한 그러했다. 

퇴근을 하면, 집으로 가는 대신 나는 서점을 갔다. 

내가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하는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쳇기가 조금은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서점 귀퉁이에서 이끌리듯 '변종모'라는 사람의 글과 사진을 읽게 되었는데, 길에서 보내는 그의 담담하고 쓸쓸한 여행이 좋았다.  

위로는 사람의 말이든, 책의 글이든 도움이 되었다면 기억에 남는다.

위로와 같았던 변작가의 책을 일기장처럼 꽂아두며 종종 꺼내 들어 읽었다.

 

책은  밀양에서의 다섯 계절을 보내고, 쓴 글들이다.

무료하기도 재미있기도 불편하기도 했을 밀양이라는 낯선 곳에서 보낸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또 위로를 받는다.

사는 건 어디가나 똑같다 싶지만, 나는 한 곳에서 한번만 사는 것이니 체감하기는 어렵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그래서 서울을 두고 5시간이나 차로 내려가야 하는 그곳에서 몇계절을 보낸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슴에 훅 들어오는 글과 차분한 흑백사진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오는 좋은 책이다.

 

 

 

 

 

 

사실 변종모 작가와는 가끔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다.

사람에게 붙임성이 없는 내게 그는 대뜸 연락처를 알려달라 했다.

나보다 몇 살 많으니, 나는 작가님 대신 형님이라고 부르며 지냈지만, 정작 그와는 만난적이 없다. 

팬으로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서로에세 응원하는 사이면 딱 좋겠다. 

 

 

 

그의 블로그 : 당신의 반대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당신의 반대편 : 네이버 블로그

에세이를 씁니다.------------ 자주 떠났다가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돌아옵니다. 그런 이야기들. 2020 신작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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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감성적인 문장과 사진으로 독자들과 만나온 여행작가 변종모가 3년 만에 신작 에세이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를 들고 찾아왔다. 그가 밀양에서 살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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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이현아

책/에세이|2022. 11.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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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은 날이 있고, 그림을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가을에는 편지를 써야 한다지만, 나는 가을에는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

따뜻한 마음을 그린 것이거나, 헛헛함을 그린 것이나 상관없이 보는 이가 알아서 이해하고 감정을 불러내도록 해주는 그림이 좋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사적이다.

소설이 감정과 이야기를 여러 페이지에 늘어 놓았다면,

그림은 오직 한 페이지로 모든 것을 말한다.

가을에는 짧은 이야기가 좋다.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껴두는 어떤날의 누군가처럼.

 

 

 

이현아의 글을 그 깊이가 깊다거나, 훌륭한 문장을 보여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이 괜찮아 보이는 것은 '글빨' 을 자랑하기 위해 수식어를 늘어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채도가 높은 글이 아니라 명도가 높은 글이다.

어린시절 이야기로부터 그 일로 인해 사적인 감정을 품은 그림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도 좋다.

 

 


 

알라딘: 여름의 피부 (aladin.co.kr)

 

여름의 피부

이현아 작가의 첫 책. 유년과 여름, 우울과 고독에 관한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푸른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에디터로 일하며 써 내려간 그림일기에서 자신이 모으는 그림들이 유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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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에 만나요 - 용윤선

책/에세이|2022. 5. 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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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는 것 좋아하고, 책 선물 하는 것 좋아하는 내가 타인에게 한 번도 선물해 주지 못한 책.

"13월에 만나요"

글쓰는 사람들에게는 커피 하는 사람으로, 커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글쓰는 사람으로 알려진 "용윤선"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제법 오래된 책이고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몇 번을 읽어본 책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책 인지도 모르겠다. 

 

"당신한테 나는 뭐야?", "함께 나누고 싶은 우주", "무엇을 나눌테야?", "풍경, 음악,오늘, 날씨, 음식, 사랑 그리고 몸의 냄새","몸의 냄새?","함께 숨을 쉬어야 가능한 일이지. 우주처럼."

 

13월이 오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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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 우지현

책/에세이|2021. 7. 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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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우지현의 새 책이다.

호크니의 그림이 떠오를 만큰 시원한 색의 표지가 눈에 띤다.

이번에는 휴식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금새라도 '풍덩' 뛰어들고 싶은 수영과 바다, 물에 대한 그림이 가득하다.

쉽고 차분한 글이다.

쉬운 단어로 깊게 파고드는 그녀의 글은 화려하지만 않지만, 쓰지 말아야 할 말은 쓰지 않는 베테랑의 글 같다.

휴식이 필요하거나, 휴식할 줄 모르는 사람은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 우지현 / 위즈덤하우스 , 19800원

 

 

 

 

 

 

휴식 시간 만큼 나를 극적으로 바꾸는 것이 또 있을까.
깊은 한 숨을 내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슬픔을 조금씩 흘려보내고,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엿보고, 새롭게 질문을 던지고, 섬세한 감각들은 꺠우는 시간,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나면 나는 전과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된다.
가만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져 있다.

 

 

 

 

풍덩!

고전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감동을 준 명화들을 소개하고 글을 써온 우지현 작가의 신작 에세이.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우지현 작가의 글과 보기만 해도 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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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책/에세이|2021. 4. 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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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써는 제목부터가 꽤나 흥미를 끄는 책이다.

(나는 책 제목이 화려할수록 선뜻 집어 들지 않는다. 그런 직감은 대부분 맞다.)

제목과 달리, 심채경이라는 사람은 정말 천문학자이고, 천문학자가 말해주는 별이야기자, 자신의 이야기이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도서관에 부탁하여 받아 본 날로 부터 볕이 좋은 봄날에 틈틈이 읽어나가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글이다.

실제 천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전문가인 그녀가 해주는 천문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전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을 술술 잘 읽힌다.

그녀는 글쓰기의 속도를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이 아닌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저자가 동경하면서 궁금한 사람들이란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있다. 도대체 저것이 돈이 되는 것일까 싶은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 인생의 전부인 사람을 안다.

저자 또한 그 사람 중 한명인 듯 보였다.

일견 쓸데 없어 보이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소중하고 귀한 시대이다.

분명 그런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주변에 있다.

난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aladin.kr/p/2yHcN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창백한 푸른 점 속 천문학자가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법. 『네이처』가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 과학자로 주목한 심채경의 첫 에세이로, 천문학자의 눈으로 일상과 세상, 그리고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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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채경의 강의

youtu.be/iqmfvk5sj6U

youtu.be/1Jz2Dn1a8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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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생활 - 이해림

책/에세이|2021. 3. 2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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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먹는것에 대해서는 욕심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지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지은이의 맛과 음식에 대한 조예가 돋보이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먹방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취재된 기사의 내용 중에 영속되지 않는 지식만을 골라내어 책으로 묶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작자에게서 아무렇게나 콘텐츠를 창착이라고 이름 붙여 팔아 먹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계절탐식’, ‘일상탐미’, ‘외식탐구’, ‘술의찬미’ 이렇게 4부로  구성된 책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사진과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이 가득 담긴 책입니다.
식재료 부터 외식음식까지 다양한 먹거리에 대해서 이렇게 제대로 쓴 글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부엌에 두고 물이 끓는 동안, 혹은 요리가 익는 동안, 오븐을 돌려놓는 동안 꺼내어 보면 너무나 좋을 책일 것 같습니다.

김해림 /  돌배게 / 20,000원

aladin.kr/p/WLrtX

 

탐식생활

한 음식이 더 맛난 이유에서 시작해 그 맛을 즐기며 먹는 방법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맛의 인문학이 곧 탐식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즐겨 먹었던 식재료와 음식들을 조금만 더 탐구해도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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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리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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