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7

몇 일 동안 많은 젊은 선생님들이 죽는다는 것을 뉴스로 목격하고 있다.
왜 선생님들이고, 나이든이 아니라 젊고 꽃같은 선생님들일까.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가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남의 일 처럼 바라볼 수 만은 없었다.
교권 회복과 학생 보호 사이에서 결국 누군가가 생명을 잃고 있는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 났다.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였는데, 오전 수업을 하려니 어느 학생의 아버지가 교실 문을 열고 조심히 들어왔다.
시골 학교라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농사일이 바빠 학교를 찾아오지도 않거니와, 수업시간에 들어올 일도 없었다.누구의 '아버지'께서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대뜸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여기 댕기는 아 아부지 되는 사람 입니더' 라는 간략한 자기 소개를 했다.자신은 무식해서 배운것도 없고, 아이를 현명하게 가르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아이의 모든 것을 선생님에게 맡겨둘 수 밖에 없고 집이 아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아이의 부모 대신이니 엄하게 가르쳐 주시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은 모두 내 탓이니 나 또한 꾸짖어 달라며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선생님께 전해주었다.천 안에는 그의 얼굴 만큼이나 검게 그을려 반들반들한 '오죽(烏竹) --검은 대나무' 으로 만든 회초리 두 자루였다.선생님께서는 공손하게 그것을 받아 들고는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며 고개를 숙여 반 아이의 아버지를 배웅하였다.1년 내내 선생님께서 회초리를 드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그저 '오죽회초리'를 탁상 위에 두고는 수업을 하셨다.그것의 무게와 의미를 중학생 아이들이 알리도 없고, 오죽 회초리 따위가 무서워 수업을 허투루 보내는 아이가 왜 없었을까.그럼에도 최소한 선생님은 우리들을 존중해 주었고, 우리 또한 사춘기 객기를 부려 선생님께 기어 오르거나 서로를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1년 내내 나 또한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서 어느날 담임 선생을 찾아올까 그것이 겁났다. 
 
공포와 존경은 다른 문제다.
교권은 '공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경'에 있는 것이고, 이것은 선생과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해당된다.
내 아이 호되게 회초리를 질을 하더라도 '사람' 만들어 달라던 그 아버지도, 그렇다고 자신이 그 아이들 때리거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도 생각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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