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석 2023. 2. 22. 10:15

취업을 하고 나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읽고 싶은 책과 음반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서였다.

도시에서 돈은 불편함을 줄여주고 마음의 빈곤을 덜하게 해준다.

그렇지만, 돈이 나의 빈약함을 채워주지는 않았다.

퇴근을 하면 곧장 교보문고로 달려가 서성거렸다.

책도 구경하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구경했다.

베스트셀러 코너와 팔아야 할 책이 가득한 매대에 있는 책은 싫었다.

나는 책의 가로면보다는 세워진 책의 세로면이 더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책장에 오롯이 꽂혀 있어야 하는 수많은 책들로 다가갔다가 '변종모' 라는 이상하고도 특이한 이름을 가진 작가의 책을 골랐다.

책을 꺼내 들어 표지를 봤다.

불안하고도 커다란 눈을 가진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이가 큰 눈망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난 그 아이의 얼굴에 홀리듯 책의 내용도 읽어보지 아니하고 끌어안고 서점을 나섰다. 

 

그 아이는 분명 여전히 커다란 눈망울로 가족을 책임지며 사는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십오년도 훨씬 지난 지금의 그는 여전히 종종 책을 쓰고 나는 그의 책을 여전히 사전처럼 들고 다닌다.

방황하는 내가 느껴지면, 그의 글을 꺼내 읽으며 도통 모르겠는 인생을 찾아보았다.

물론 그의 책에 정답이 적혀 있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지낸 남자의 글을 읽으며 위안을 얻는다.

길에서 자주 서성이던 그는 작은 고양이를 키우며 예전보다 한가한 글을 쓴다.

나 또한 경쟁과는 거리를 둔 한 발 물러선 인생을 살고 있다.

가끔 그와 통화를 하며, 책은 또 언제 쓰냐며 득달을 한다.

고단한 글쓰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의 반대편에서 언제나 응원을 보낸다.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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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씁니다.------------ 자주 떠났다가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돌아옵니다. 그런 이야기들. 2022 신작 "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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