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10
내 수업을 듣는 한 아이가 '이거 드릴까요' 하면서 내 손에 벚꽃잎을 하나 놓아준다.
나는 그 아이를 잠시 쳐다 봤다.
갑작스럽기도 했고, 예쁘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아직 당연한 사람들을 나는 매주 본다.
20년 넘게 아프거나, 늙었거나, 웃을 일이 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살다가
팔자에도 없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보니 웃거나, 졸거나, 정신없고 예쁜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 밝아졌다.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르치거나(이말이 너무 싫다) 지식을 전하거나 조금씩 알려주면서도, 내 강의실의 아이들 만큼은 경쟁 시장에 몰아넣기는 싫었다.
경쟁은 사람을 멍들게 하고 다수의 아이들은 패자로 만든다.
약육강식은 아프리카 초원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그리해서는 안된다.
그것보다는 그들이 같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길 바랄 뿐이다.
한국사회의 가장 문제는 '경쟁'과 '엘리트' 주의이다.
이 두가지가 얼마나 사회악으로 작용하였는가는 경쟁적으로 공부를 하고 타인을 물리쳐 낸 그들, 소위 엘리트가 된 이들이 지금 어쩌고 있는지 보면 된다.
경쟁에서 이기고 높은 곳에 올라선 사람이 아닌 약자를 헤아리고 사회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엘리트'라 정의하고 싶다.
내 시대에서 경쟁을 끝내야 마땅하다.
경쟁의 삶은 행복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불행과 좌절만 양산한다.
언제쯤 너희에게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벚꽃이 가득한 교정이라며, 수업 말고 사진 찍으러 나가자는 어떤 아이의 말에 웃게된다.
그래. 4월이지.
시간은 아껴쓰기도 해야 겠지만, 이롭게도 써야 한다.
당연한 세월에서 당연하지 않은 계절을 보낸다.
너희의 젊음이 나의 청춘이지는 않지만, 너희들 덕분에 매주 힘을 얻는다.
무심한 침묵에, 잠와요 하는 투정에, 까르르 웃는 아직은 아기일지도 모르겠는 그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