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것들 - 1

일주일에 한 번 지방의 작은 전문대에 출강을 나간다.

어느 날 어쩌다 보니 가르치는 일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IMF 시절 영향으로 어렵게 취업이 된 시기에 학교를 나왔으며, 어쩌다가 병원에 들어가고 또 어쩌다가 컴퓨터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았다. 

운 좋게도 큰 무리없이 20년 가까이 실무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담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2학년이다.

2학년이 사실 좋긴 하다.  1학년 처럼 막 스무살이 되어서 그냥 몸만 큰 아이도 아니고, 취업을 앞둔 불안하기 짝이 없거나, 취업하고 난 다음 설렁설렁 학교를 다니는 3학년이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스물한살의 몸만 큰 아이는 스무살과 별반 다르지는 않다.

너희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제약 당하다가, 몇 일 더 살았다고 너희는 오늘부터 성인이니까 세상 모든 건 알아서 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도 너희가 져야 한다며 매몰차게 사회에 던져진다.

예전처럼 고루한 선배들과 동아리 활동을 한다거나 학과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며 대학을 나온 사람이면 모를까, 지금의 이들은 크고 작은 성추행 혹은 갑질이나 일삼는 본인보다 학교 더 다닌 사람이 있을 뿐, 필요한 조언이나 개고생을 벗어나게 해줄 길잡이나 선생은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정부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에 근거하여 규정과 원칙대로 가르친다.

어딘가에 써먹기 위한 기술이나, 소위 자격증 같은 것을 잘 따낼 수 있는 쪽집게 강사처럼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익히고 경험한 것들을 정말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 것인지 선택하기는 어렵다.

강의를 수락하고 지금까지도 고민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모든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그만한 자질도 나에겐 없다.

그저 적당한 비용으로 나의 실무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길 바라는 학교와 정부가 있을 뿐 인지도 모르겠다. (취업까지 시켜주면 좋고..)

가르치는 일은 일종의 사회적 책무이다. (돈이 안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회적 책무라는 것은 사실 문안하게 살아온 나에 비해 엄혹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고 예쁘고 불안한 그들에게 어른으로써 미안해서였다. 

내가 아는 조악한 지식일지라도 나누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덜 미안하기 때문이다.

나도 아직 제대로 된 어른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더 살고 더 배웠으니 나눠주는 것은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난 선생일지라도 많은 것을 배워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인생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밀란쿤테라

 

 

 

댓글()

탐식생활 - 이해림

책/좋았던 책|2021. 3. 29. 12:41

저는 먹는것에 대해서는 욕심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지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지은이의 맛과 음식에 대한 조예가 돋보이는 아주 좋은 책입니다.
먹방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취재된 기사의 내용 중에 영속되지 않는 지식만을 골라내어 책으로 묶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작자에게서 아무렇게나 콘텐츠를 창착이라고 이름 붙여 팔아 먹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계절탐식’, ‘일상탐미’, ‘외식탐구’, ‘술의찬미’ 이렇게 4부로  구성된 책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사진과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이 가득 담긴 책입니다.
식재료 부터 외식음식까지 다양한 먹거리에 대해서 이렇게 제대로 쓴 글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부엌에 두고 물이 끓는 동안, 혹은 요리가 익는 동안, 오븐을 돌려놓는 동안 꺼내어 보면 너무나 좋을 책일 것 같습니다.

김해림 /  돌배게 / 20,000원

aladin.kr/p/WLrtX

 

탐식생활

한 음식이 더 맛난 이유에서 시작해 그 맛을 즐기며 먹는 방법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맛의 인문학이 곧 탐식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즐겨 먹었던 식재료와 음식들을 조금만 더 탐구해도 일상이

www.aladin.co.kr

저는 요리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

' > 좋았던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희진의 글쓰기 - 정희진  (0) 2023.02.08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 변종모  (4) 2022.11.20
여름의 피부 - 이현아  (0) 2022.11.10
13월에 만나요 - 용윤선  (0) 2022.05.20
풍덩 - 우지현  (0) 2021.07.03

댓글()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2021. 3. 18. 09:36

시를 잘 읽지 않는 시대가 된지 오래인 것 같다. (나만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시를 읽으세요? 라는 질문은 당신은 낭만적인가요 라는 질문의 다른 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 또한 시를 읽는 사람은 아니다.

짧은 시를 읽어 긴 호흡으로 생각을 하기에는 바쁜 날들이니까.

핑계에 가깝다.

 

이병률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끌림'이라는 여행산문으로 유명하겠지만, 그는 시인이다.

소설가 한강이 긴 글을 시 처럼 쓰는 사람이라면,

시인 이병률은 짧은 글을 소설처럼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고 두고 꺼내 들어 보기에 시집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오히려 요즘은 시를 많이 읽는다.

시간을 두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하루의 잠깐 나의 뇌를 다른 방향으로, 다른 곳으로 놓아둔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습니다

더 머물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 집에 잠시 머물 다음 사람일 뿐이니

 

당신은, 그 집에 살다 가세요 

/ 시인의 말 <이병률>

 

알라딘: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aladin.co.kr)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45권. 이병률 시인이 3년 만에 내놓는 신작 시집이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는 나보다 나의 감정을 더 잘 아는 사람,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이병률 시인이

www.aladin.co.kr

___ 문학동네 시인선 / 이병률 / 9,000원

댓글()

인공지능 시대의 보건의료와 표준

책/괜찮았던 책|2021. 3. 15. 15:55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시대에서 의료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IT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가 상당 부분 진행이 되고 있다. (헬스케어, 개인건강, 웰니스 등을 찾아보길 바란다)

그중에서 의료정보는 관심과 중요도에 비해 아직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유야 많겠지만, 병원과 병원 사이의 상이한 의료정보시스템과 데이터 구조,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제약, 표준화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최근에야 보건의료정보의 표준시험과 인증, 개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일부 성과를 보이기도 하고 있고,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의 개설로 인해 전자의무기록 및 병원정보시스템의 표준 및 인증제를 위한 기관이 생기기도 하였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 (k-his.or.kr)


관련해서 나도 공부를 하고 있고, 자료를 찾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소개하는 책은 그래서 최근에 읽어본 책 중에서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글을 남긴다.

인공지능 시대의 보건의료와 표준 / 안선주 지음 / 청년의사 

저자는 국제표준화기구에 활동을 했으며, 현재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 자문위원, 성균관대학교 양자생명물리과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안선주이다.

의료기관에 종사하고 있거나, 헬스케어, 보건의료데이터, 전자의무기록 표준화에 관심에 있거나. 의료정보학 전공자는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표준화 기구, 메시지 표준, 문서 표준, 용어 표준,  FHIR, 국내외 디지털 헬스 정책과 제도에 대해서도 잘 정리가 되어 있다.

더보기
책의 주요 내용

1. 보건의료정보와 시스템  2. 표준과 상호운용성 3. 보건의료정보표준 4. 적합성 평가 5. 디지털 헬스 정책과 제도

 

 


코로나 시대 이후에도 의료기관은 변화를 꾀할 것이며, 원격의료 및 화상진료, 의료기관 간의 데이터 교환 등은 필수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한다면 표준화는 필수 과정이 될 것이며 그에 대한 준비도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보건의료와 표준 - YES24

 

인공지능 시대의 보건의료와 표준

인공지능 시대의 보건의료는 어떤 모습일까?미래 의료의 필수 전제인 최신 표준을 다룬 국내 최초의 책!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이 여러 분야에서 폭발적

www.yes24.com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지 않고, 자비로 책을 구매하여 글을 올립니다.

댓글()

책과 도서관 이야기

스몰토크/수다|2021. 3. 11. 16:58

내가 하는 일이 기술쪽이다 보니 기술서적을 많이 읽게 된다.
물론 구매한 책을 모두 읽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고 읽지도 않을 책을 무턱대고 구매부터 하는 것도 아니다.
기술서적은 기본적인 판매부수가 확보되는 서적이 아니다.
게다가 가격도 비싼 편이라 선뜩 구매하기도 힘들고, 구매자가 적으니, 구매평 등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매번 번잡한 시내 서점까지 가서 보고오기도 그렇다.
많이 팔리는 서적이 아닌 경우 출판사로써는 계속 내어 놓을 수 없으니 금방 절판이 되어 버린다.
최신 기술이 이제서야 보편화 되고, 참고할 만한 서적이다 싶거나, 권유를 받게 될 때 쯤에는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워 진 이후 인것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싶은 (괜찮다고 소문이 난 것이 아닌) 책은 우선 구매하는 것이다.
출판사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정말 씁쓸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수준높은 기술서적은 점점 찾아보기도 힘들다.
대부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오피스 활용서 이거나, 자격증 시험에 합격을 위한 수험서가 기술서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중급이상의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레퍼런스 할 만한 서적은 점점 찾아보고 힘들다.

사실, 안정적인 출판시장은 서점에서 팔리는 소비자의 구매로는 유지하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인기있는 작가에게서 번 돈으로 나머지 많이 팔릴지 어떨지 모르는 작가의 책을 내어주고 복권 터지듯이 기다리는 구조라고 봐도 무당하다.
안정적이면서 다양한 지식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출판문화는 사실 도서관의 활성화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각 도시의 도서관에서 일정부분 신간구매를 하여준다면, 출판사로써는 어느정도 수입확보가 되니 인기 작가가 아니더라도,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울산도서관 - 가보면 정말 예쁘다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수는 2017년 기준으로 1,042개이며 인구 5만명당 1개정도의 공공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은 7000개가 넘는다)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지식공유 및 복지혜택으로써의 시설개념도 있지만, 출판문화의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공공도서관에 가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된 도서관은 거의 없다고 보면된다.
아이들 방학숙제하는 곳 이거나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독서실이 된지 오래이다.
시민들중에서 공공도서관에 가서 원하는 책을 읽고, 혹은 도서신청을 해서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도록 민원을 넣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눈만 돌리면 시민들의 구심점이 될만한 도서관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게 경제 성장률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스몰토크 >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사한 달력 선물  (0) 2023.02.15
덜 사랑한 사람  (0) 2023.02.13
시간에 대하여  (3) 2023.01.26
커피일기.21.9.16.  (0) 2021.09.16
커피일기.21.8.31.  (0) 2021.08.31

댓글()